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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관계가 사랑인지 아닌지보다 애초에 우리가 사랑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를 의심하게 됐습니다. 드라마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왜 현실은 이렇게 다를까요. 로맨틱 러브라는 개념이 우리를 얼마나 잘못 길들여 왔는지, 제 경험을 통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로맨틱 러브, 사실 만들어진 감정이었습니다

혹시 "너 없으면 못 살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진짜 사랑의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저서 친밀함의 변화에서 사랑의 역사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열정적 사랑(Passionate Love), 종교적 헌신(Devotion to God), 그리고 이 둘이 합쳐진 로맨틱 러브(Romantic Love)입니다. 여기서 로맨틱 러브란, 불타는 열정에 "우리는 운명"이라는 종교적 절대성이 결합된 형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연애 감정에 운명론적 포장지를 씌운 것입니다(출처: 앤서니 기든스, 『친밀함의 변화』).

흥미로운 건, 역사적으로 열정적 사랑은 결혼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18세기 이전까지 결혼은 경제적·사회적 계약이었고, 당사자의 감정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대중 소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신문 연재 소설에서 시작된 로맨스 서사는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지금의 넷플릭스까지 이어지며 로맨틱 러브를 인류의 보편적 진실인 양 포장해왔습니다.

저도 이 세뇌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잘못했어"를 먼저 말하면 관계가 회복될 거라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의 관계는 드라마 대본대로 굴러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경험상 가장 먼저 깨달은 건, 로맨틱 러브는 소비되는 콘텐츠로는 훌륭하지만, 실제 관계의 설계도로는 위험하다는 점이었습니다.

  • 열정적 사랑(Passionate Love): 모든 문화권에 존재했던 보편적 감정. 단, 과거에는 결혼과 무관했음
  • 종교적 사랑(Devotion): "당신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절대적 헌신의 개념
  • 로맨틱 러브(Romantic Love): 위 두 가지가 결합된 근대의 산물. 대중매체가 확산의 주역
요약: 로맨틱 러브는 인류의 본능이 아니라 18세기 이후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가깝습니다.

 

연애가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

드라마 속 연애는 왜 항상 결혼 직전에서 끝날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이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의 삶을 다룬 이야기는 어느 순간 로맨틱 코미디가 되고, 두 사람의 차이를 못 이겨 벌어지는 해프닝이 주된 플롯이 됩니다. 결혼 전까지의 애틋함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장르 자체가 바뀌는 겁니다. 저는 이 장르 전환이 단순한 연출 문제가 아니라, 로맨틱 러브 자체의 한계를 드라마 작가들조차 인정하는 신호라고 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관계 안에서 "뭘 잘못했는지 알기나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은 복잡했습니다. 미안함 반,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나한테 뭔가를 요구하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반이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서로에게서 원하는 반응을 얻어내려는 건지.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Romantic Love Ideology)는 "난 네가 필요해"라는 의존의 언어를 사랑의 증거로 포장합니다. 여기서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란, 열정적 연애 감정을 삶의 완성 조건으로 내면화하게 만드는 사회적 믿음 체계를 의미합니다. 이 믿음이 깊어지면 상대방이 내 감정을 충족시켜주지 않을 때 배신감으로 돌변합니다. 그게 바로 사랑과 미움이 종이 한 장 차이인 이유입니다.

관계 연구로 잘 알려진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수십 년간의 부부 관찰 연구를 통해 이혼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로 '경멸(Contempt)'을 꼽았습니다. 경멸이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상대방을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로맨틱 러브에 지나치게 기댄 관계일수록,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경멸로 빠질 위험이 높다는 점이 제 경험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출처: The Gottman Institute, Research Overview).

요약: 연애 감정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그것을 삶의 완성 조건으로 여기는 순간 관계는 서로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합류적 사랑, "있으니까 더 좋아"로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그 관계가 끝난 뒤 수년간 연애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쳐서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관계에서 멀어지고 나니 오히려 제 자신이 더 선명하게 보이더군요. 상대에게 맞추느라 흐릿해졌던 제 생각과 감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앤서니 기든스는 그 대안으로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을 제시합니다. 합류적 사랑이란, 두 강이 만나 더 큰 흐름을 이루듯 각자의 주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나아가는 관계 방식을 말합니다. "난 너 없어도 돼, 하지만 네가 있으니까 더 좋아." 이 문장이 합류적 사랑의 핵심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이게 다소 냉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게 오히려 훨씬 단단한 사랑의 형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로맨틱 러브가 "너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가르친다면, 합류적 사랑은 "나는 온전하고, 네가 그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전자는 상대방을 행복의 조건으로 만들고, 후자는 상대방을 행복의 선물로 바라봅니다. 제 경험상 이 차이가 관계의 긴장도를 결정적으로 바꿉니다. 의존이 줄어들면 집착도, 경멸도 함께 줄어드니까요.

결국 사랑은 상대방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내 마음의 상태입니다. 상대가 내 기대에 부응해야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로 관계를 시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 개념을 완전히 체화했다고 자신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난 혼자서도 괜찮다"는 감각을 갖추고 나서 시작하는 관계가, 그렇지 않을 때의 관계보다 훨씬 덜 아프더라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약: 합류적 사랑은 의존 대신 주체성을 바탕으로 하며, "없어도 되지만 있으니 좋은" 관계가 가장 건강한 사랑의 형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로맨틱 러브가 나쁜 건가요? 연애 감정 자체가 문제인가요?

A. 연애 감정 자체, 즉 열정적 사랑(Passionate Love)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감정을 "이 사람이 없으면 내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만드는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입니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느끼되, 그것을 삶의 필수 조건으로 내면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합류적 사랑의 출발점은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다"는 감각입니다. 상대방 없이도 일상이 흘러갈 수 있는 독립적인 상태를 먼저 갖추고, 그 위에서 관계를 더하는 방식으로 접근해보시길 권합니다. 상대를 통제하거나 내 감정의 해결사로 삼으려는 패턴이 보인다면, 그게 합류적 사랑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Q. 존 가트맨의 연구에서 경멸이 이혼의 원인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A. 네,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수십 년에 걸친 부부 관찰 연구를 통해 경멸(Contempt)을 이혼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로 지목했습니다. 경멸은 단순한 다툼과 달리, 상대를 열등하게 바라보는 태도로 관계를 서서히 잠식합니다. 로맨틱 러브에 기댄 관계에서 기대가 반복적으로 무너질 때 경멸이 싹트기 쉽다는 점에서, 건강한 관계 설계가 중요합니다.

 

Q. 결혼 후에도 로맨틱한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나요?

A. 로맨틱한 감정 자체를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연속극 같은 열정을 결혼 생활의 기준으로 삼으면, 일상적인 편안함이 찾아왔을 때 관계가 식었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기든스의 관점으로 보면, 결혼 이후에는 열정보다 신뢰와 존중이 기반인 합류적 사랑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결론

저는 그 관계가 끝난 뒤 한동안 연애 자체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문제는 연애가 아니라, 연애를 바라보던 제 프레임이었다는 것을. 드라마와 유행가가 심어준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를 진짜 사랑인 줄 알고 그대로 실행했던 게 문제였습니다.

"난 너 없어도 돼, 근데 있으니까 더 좋아." 이 문장이 처음엔 쿨하고 냉정하게 들렸습니다. 지금은 이게 가장 따뜻한 사랑의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를 내 행복의 조건으로 묶어두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아끼는 마음이 아닐까요. 로맨틱한 감정은 마음껏 느끼되, 그 감정이 관계를 설계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제가 수년간 혼자 있으면서 천천히 내린 결론입니다.

 

참고:사랑하는데 불행한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SOUYI0g_f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