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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이루면 더 강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목표를 달성한 순간, 저는 강해지기는커녕 허무해졌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아랑 선수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제가 어릴 때 야구공 하나로 겪었던 그 허탈함의 정체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목표를 이루면 더 강해진다는 말, 진짜일까요
일반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면 자신감이 쌓이고, 그 자신감이 다음 도전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삼촌과 매일 공터에서 캐치볼을 했습니다. 그때 삼촌은 일부러 약올리듯 공을 살짝 높게 던져서 제가 뒤로 쫓아가게 만들었는데, 그게 너무 분해서 삼촌 키를 넘기는 공을 던지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넉 달을 팔힘 운동과 조깅으로 체력을 길렀고, 결국 그 목표를 해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제 야구의 끝이었습니다. 목표를 이루고 나서 시시해졌고, 더 이상 운동장에 나가지 않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의지가 약한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목표 설정 자체가 잘못됐던 것이었습니다.
단계별 목표 설정(Staged Goal Setting)이란 하나의 큰 목적을 여러 단계로 쪼개어 각 단계마다 성취감을 반복적으로 얻으면서 동기를 유지하는 전략입니다. 쉽게 말해, 삼촌 키를 넘기는 것 다음에 변화구 익히기, 그 다음엔 포지션 배우기처럼 계단식으로 목표를 이어붙였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딱 하나의 목표를 달성한 뒤 스스로 교만해졌고, 결국 야구를 그만뒀습니다.
- 단일 목표만 있을 때: 달성 후 동기 공백이 생기기 쉽다
- 단계별 목표가 있을 때: 성취감이 반복되며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어진다
- 교만(자기과신)은 목표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포기 직전의 그 한마디가 오히려 불을 붙이는 이유
김아랑 선수는 14살에 서울로 올라가 재능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극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혼자 눈물을 삼키던 중, 어머니에게서 "운동을 그만두는 게 어떨까"라는 말을 들었고, 역설적으로 그 순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 반응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발 심리(Reactance)와 닿아 있습니다. 반발 심리란 선택의 자유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오히려 그 선택에 더 강하게 끌리는 인간의 본능적 반응을 말합니다.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김아랑 선수에게는 선택지가 닫히는 신호로 작용했고, 그것이 도리어 마지막 불씨가 된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캐치볼을 시작한 초반, 삼촌이 "그냥 포기하지 뭐"라고 장난처럼 던진 말이 오히려 이를 악물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조롱과 위로의 경계 어딘가에 있던 그 말 한마디가 지속의 연료가 됐던 셈입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 — 회복탄력성 개요에서도 역경의 한가운데서 의미를 찾는 능력이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회복탄력성이란 외부의 충격이나 실패를 겪은 뒤 심리적으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거나 그보다 더 성장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트라우마를 없애려 하지 않고 안고 달린 방법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김아랑 선수는 얼굴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스케이트를 다시 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추월당하는 순간에 대한 공포가 남았다고 했는데, 그녀가 선택한 방법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트라우마(Trauma)를 없애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그대로 안은 채 완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여기서 트라우마란 강렬한 심리적 충격 사건이 남긴 정신적 상처로,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공포나 회피 반응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전략이 "선두에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뒤에서 추월당하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아예 앞에서 달리는 방식으로 경기를 재설계한 것이었습니다.
이 접근법은 노출 치료(Exposure Therapy)의 원리와 유사합니다. 노출 치료란 두려운 상황을 완전히 회피하는 대신 통제된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직면하게 함으로써 공포 반응을 완화하는 심리 치료 기법입니다. 김아랑 선수는 임상적 치료 대신 경기 전략을 통해 스스로 같은 원리를 적용한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야구를 그만뒀을 때 실패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목표가 사라진 공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아랑 선수처럼 두려움을 안고도 나아간 사람의 이야기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링크에 나간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회복탄력성의 실천이었던 겁니다.
국가대표 탈락 후 꽃구경이 재기가 된 사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을 때, 김아랑 선수는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건넨 것은 거창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꽃구경 제안이었고, 그 일상의 평온함이 무너진 마음을 서서히 복구시켜 줬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면 더 강한 동기부여나 자기 자극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루틴, 즉 일상으로의 귀환이 더 빠른 회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뇌가 과부하 상태일 때 억지로 동기를 주입하면 오히려 번아웃(Burnout)이 심해집니다. 번아웃이란 극심한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신체적·정서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말합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 — 번아웃 공식 분류에 따르면 번아웃은 만성적인 직장 내 스트레스가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2019년부터 국제질병분류(ICD-11)에 공식 포함됐습니다. 선수들이 겪는 슬럼프도 이 범주와 맞닿아 있습니다.
김아랑 선수의 부모님은 딸에게 해결책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옆에 앉아 꽃을 같이 봤을 뿐입니다. 그 단순한 행동이 재기의 계기가 됐다는 사실은, 성취 이후의 공백을 채우는 방법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 역시 야구를 그만두고 나서 억지로 다른 운동을 찾아 헤맸는데, 그게 오히려 소진을 더 키웠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인정하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목표를 이뤘는데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게 정상인가요?
A. 정상입니다. 이를 흔히 '목표 달성 후 공허감'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의지 부족이나 감사함을 모르는 태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 경험상 이건 단계별 목표 설정이 없을 때 거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반응입니다. 다음 단계의 목표가 없으면 뇌는 보상 회로가 멈춘 상태가 되어 무기력함을 느끼게 됩니다.
Q. 트라우마가 있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요?
A. 트라우마를 완전히 없애고 나서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김아랑 선수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품은 채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설계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노출 치료 원리도 이와 같은 방향입니다.
Q. 번아웃 후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강한 동기부여나 새로운 자극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방법은 오히려 번아웃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번아웃을 관리 실패의 결과로 정의하는 만큼, 먼저 에너지를 회복하는 일상 루틴으로 돌아가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거창한 동기부여보다 꽃구경 같은 작은 평온함이 먼저입니다.
Q. 강한 사람이 되는 것과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는 것, 뭐가 더 중요한가요?
A.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쓰러지지 않는 강함'보다 '쓰러져도 다시 웃으며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이 장기적으로 훨씬 실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괜찮아진 후가 아니라, 아직 무섭고 불안한 상태에서 다시 나간 그 순간들이 진짜 강함을 만든다는 것을 김아랑 선수의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결론
성취란 금메달이나 목표 달성의 순간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 한 번의 캐치볼 목표를 이루고 나서 허무함을 느꼈고, 그게 오랫동안 의지 부족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단계별 목표 설정의 부재였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음엔 다르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김아랑 선수가 말한 것처럼, 강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넘어져도 다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편이 훨씬 오래 갑니다. 지금 어떤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면, 그 목표 너머에 다음 목표를 미리 놓아두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게 멈추지 않는 방법 중 제가 가장 늦게 배운, 그러나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참고 : 국가대표 탈락에 좌절했을 때 나를 살린 부모님의 '이 행동'
https://www.youtube.com/watch?v=QMDmNeyrRX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