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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열 명이 넘게 내 주위를 맴돌았는데도, 저는 매일 밤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를 늘리는 데 그토록 집착했지만, 그 갈증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외로움이란 사람 수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두 가지 외로움 — 저는 엉뚱한 처방을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제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가족 관계도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감(孤獨感)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고독감이란 물리적 고립과 무관하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단절의 감각입니다. 저는 이게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친구를 더 사귀면 해결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서먹했던 반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방, 스터디 모임, 방과 후 약속… 어느새 새로 사귄 친구만 열 명이 넘었고, 부모님은 제 적극성에 감동하셔서 용돈도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완벽한 중학생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사람이 많아질수록 공허함은 오히려 더 짙어졌습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외로움에 두 종류가 있다는 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물리적 고립(Physical Isolation)으로, 말 그대로 곁에 사람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건 사람을 만나면 어느 정도 해소됩니다. 하지만 또 하나는 군중 속 고립(Social Isolation)입니다. 여기서 군중 속 고립이란, 주변에 사람은 넘치지만 아무도 나를 진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감각을 말합니다. 제가 겪은 건 두 번째였습니다.
이 두 번째 외로움은 특히 개인이 성장하거나 삶의 방향이 바뀌는 시기에 자주 찾아온다고 합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사회적 연결의 질이 양보다 심리적 안녕감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양만 늘리는 처방을 계속했고 결과는 더 깊은 공허함이었습니다.
- 물리적 고립: 곁에 사람 자체가 없는 상태 → 사람을 만나면 해소 가능
- 군중 속 고립: 사람은 있지만 진정한 이해가 없는 상태 → 사람을 더 만나도 오히려 악화
- 자신의 외로움이 어느 쪽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핵심
고독 직면 — 바닥까지 내려가 본 뒤에 알게 된 것
결국 친구들과의 관계는 하나씩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비난하고, 속으로는 경멸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다른 사람 탓이라고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외로움의 본질을 몰랐으니까요.
외로움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진화적 공포 반응(Evolutionary Fear Response)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적 공포 반응이란, 우리 뇌가 무리에서 이탈하는 상황을 생존 위협으로 인식하여 고통 신호를 보내는 본능적 반응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극심한 외로움 앞에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과장이 아니라 뇌가 실제로 그렇게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NCBI — Social neuroscience of loneliness에서도 외로움이 신체적 통증과 유사한 뇌 영역을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SNS 과몰입, 과도한 관계 집착, 심지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제가 친구 만들기에 집착했던 것도 정확히 이 패턴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더 큰 공허함과 관계의 파탄이었고요.
제 경험상, 이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그 감각을 피하지 않고 바닥까지 내려가보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저는 누가 떠나도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곁에 있고 없고에 따라 흔들리던 게 조금씩 멈췄습니다. 외로워지는 것 자체가 더 이상 두렵지 않으니, 역설적으로 관계가 훨씬 편안해졌습니다.
자기 증폭 — 외로움이 저를 만들어준 시간
고독을 피하지 않기로 결심한 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달리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나 SNS 대신, 글을 쓰고 혼자 걷고 낯선 동네 골목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어떤 종류의 공간에서 숨이 트이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눈치를 보느라 한 번도 드러낸 적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회복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자신이 특정 상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을 말합니다. 외로움을 버텨낸 경험이 쌓이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버텨낼 수 있다는 감각이 생깁니다. 이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외로움이 자신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걸 그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또한 외로움을 창조적 발산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위대한 예술가나 작가들이 극도의 고독한 시간을 거쳐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듯이, 이 감정에는 내면에서 끌어올려야 할 에너지가 담겨 있습니다. 한편, 외로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특정 집단을 혐오하거나 분노를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제가 그 친구들을 경멸했던 것처럼요. 그 시간을 자기 발견에 쓰기에도 부족한데, 혐오에 낭비하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지금 저는 그 중학교 3학년의 공허함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그 감각이 없었다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이토록 진지하게 들여다볼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사람이 많은데도 외로운 건 제가 이상한 건가요?
A.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도 친구가 열 명 넘게 생겼을 때 가장 심한 고독감을 느꼈습니다. 이건 군중 속 고립이라는,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진정한 이해가 없을 때 흔히 나타나는 감각입니다.
Q. 외로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A. 외로움은 인간의 생존 본능과 연결된 진화적 공포 반응이기 때문에,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비를 없앨 수 없듯이 외로움 자체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직면하고 활용하는 쪽이 회피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걸 제가 직접 겪어봤습니다.
Q.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어떻게 하나요?
A. 그 고통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안에서 뭔가를 만들어보는 것을 권합니다. 글쓰기, 산책, 새로운 동네 탐방처럼 창조적이거나 발산적인 활동이 도움이 됩니다. 제 경우엔 혼자 걷던 시간이 결국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 외로움 때문에 관계에서 자꾸 집착하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집착은 대부분 외로워질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나옵니다. 저도 그 두려움 때문에 친구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다 오히려 다 잃었습니다. 외로움 자체를 한 번 정면으로 버텨내고 나면, 그 공포가 점점 약해지면서 관계에서 집착하는 빈도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결론
중학교 때의 저는 외로움을 없애야 할 적으로만 봤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끌어모으고, 관계에 집착하고, 결국 그 친구들을 탓하며 스스로 더 깊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지만,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외로움은 없애는 게 아니라 다루는 것입니다. 자신의 외로움이 물리적 고립인지 군중 속 고립인지를 먼저 가려내고, 그 바닥을 한 번 직면해보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자기 발견과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해보는 것. 이 순서가 제가 시행착오 끝에 찾은 방향입니다. 다음번에 고독감이 찾아온다면, 피하기 전에 잠깐 그 안을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 외로울수록 반드시 혼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AuwbdxKHT6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