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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 시절 가장 외로워 보였던 친구가 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는 걸 기억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그녀의 입에서는 늘 "외로워"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지각된 외로움 — 혼자여서 외로운 게 아닙니다
심리학에는 '지각된 외로움(perceived loneliness)'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지각된 외로움이란, 실제로 사회적 접촉이 얼마나 있느냐와 무관하게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감각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본인의 해석이 외로움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저와 가까워졌던 그 학과 친구가 딱 이 경우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가족과 식탁에 앉아 있을 때도 "외로워"를 달고 살았습니다. 왜 외롭냐고 물으면 "그냥 외로워"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이미 스스로를 '외로운 사람'으로 규정해 버린 상태였고, 그 울타리 안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시카고 대학교 심리학과 존 카치오포(John Cacioppo) 교수가 10년간 진행한 외로움 추적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 초점적 사고(self-focused thinking)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초점적 사고란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처럼 자기 자신에게만 시선이 고정되는 인지 패턴을 말합니다. 이 패턴이 반복될수록 타인과의 연결에서 멀어지고, 외로움은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출처: 시카고 대학교).
제가 그 친구를 오래 지켜보면서 느낀 것도 비슷했습니다. 그녀는 주변 상황보다 자기 안의 감각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외로움 자체를 없애려 하지 않고, 그저 외로움을 버텨내는 데만 에너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외로움이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 외로움은 실제 혼자인 상태가 아닌, 스스로 느끼는 지각된 감각이다
- 자기 초점적 사고가 반복될수록 외로움은 심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 외로움을 '견디는 것'과 '해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재양육 — 뇌가 다시 연결되는 데 걸리는 시간
외로움이 오래 지속되면 뇌에도 흔적이 남습니다. UCLA 정신건강의학과 대니얼 시걸(Daniel Siegel)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으로 오랫동안 박탈된 상태가 지속되면 뇌의 신경 회로가 가늘어지거나 단절되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출처: UCLA Health). 이 상태에서 회복하려면 단순한 의지나 마음가짐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걸 교수가 제시한 방법이 바로 '재양육(re-parenting)'입니다. 재양육이란 다른 사람과 안정적이고 일관된 관계를 3~5년 이상 유지하면서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감각을 뇌가 실제로 경험하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그 대상이 반드시 연인이나 가족일 필요는 없습니다. 친구도 되고, 반려동물도 됩니다.
제가 알던 그 친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전환점은 아주 작은 데서 왔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맨홀 근처에서 벌벌 떨고 있는 유기견을 발견했습니다.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밥을 챙기기 시작했고, 강아지 건강 정보를 찾아보고 동물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순간부터 그녀의 시선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 바깥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SNS에 강아지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와 산책한 이야기, 처음으로 앉기를 가르친 이야기. 그 게시물들에는 댓글이 달리고, 소소한 교류가 생겼습니다. 솔직히 그 변화가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강아지와의 관계가 일종의 재양육 경험으로 작동한 셈이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더 이상 "외로워"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초점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방법
외로움을 스스로 해결하려다 보면 한 가지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를 계속 파고드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방향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각이 생각을 낳으면서 감정이 더 무거워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폐(迷惑)'라는 개념이 여기서 발목을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민폐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나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심리로, 일본과 한국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문화적 특성입니다. 심리학계에서는 이 개념이 없는 문화권의 연구자들이 한국과 일본의 피실험자 행동 패턴을 보고 '과도한 자기 억제'로 분류할 만큼 독특한 현상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타인에게 민폐가 될까 봐 스스로 차단하다 보면, 결국 모든 감정이 안으로만 쌓이게 됩니다.
제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거의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화를 폭발시키거나 직접 대면하는 방식은 오히려 분노를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카타르시스 오류(catharsis fallacy)라고 부르는데, 감정을 터뜨리는 행위가 실제로는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하는 역설을 의미합니다. 부치지 않는 편지를 써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 상황을 포괄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깁니다.
또 하나는 아주 작은 즐거움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감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빈번하게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는 것, 즉 긍정 정서 빈도(positive affect frequency)가 높은 상태를 말합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잠을 잘 자고, 몸이 개운할 때의 그 순간들이 쌓여 삶의 질을 만듭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향초 하나 켜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무게가 조금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혼자 있는 걸 즐기는데 외로운 건가요?
A. 혼자 있는 상황 자체가 외로움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핵심은 지각된 외로움, 즉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는지 여부입니다. 혼자 있어도 충분히 편안하고 연결감을 느낀다면 심리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태입니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Q. 재양육을 받으려면 꼭 상담사나 전문가가 필요한가요?
A. 반드시 전문 상담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재양육의 핵심은 안정적이고 일관된 관계를 오래 경험하는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 오래된 공동체, 반려동물과의 관계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애착 문제가 깊다면 전문가 도움을 함께 받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Q. 외로울 때 사람을 더 만나면 해결되지 않나요?
A. 단순히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만으로는 외로움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초점적 사고 패턴이 남아 있으면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낍니다. 중요한 건 만남의 횟수가 아니라 관계의 질과 안정감입니다. 피상적인 접촉보다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 한두 개가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Q. 외로움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A. 실제로 영향을 줍니다. 만성적인 외로움은 면역 체계를 교란시켜 상처 회복이 더디거나 감염에 취약해지는 생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몸이 일정 수준의 사회적 연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과 일치합니다. 외로움을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닌 건강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그 친구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외로움을 끊은 건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작고 떨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그녀의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놨고, 그 방향 전환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나 말고 다른 무언가를 돌보는 아주 작은 행동일 수 있습니다.
지금 외로움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우선 그 외로움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오늘 외로웠던 순간을 짧게라도 글로 적어보십시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어떻게 다른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천천히 확인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 나만 혼자 남겨진 것 같을 때..."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뎌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https://www.youtube.com/watch?v=kk7CUV0G7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