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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친구의 문제가 뭔지 몰랐습니다. 분명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인데, 왜 항상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 친구는 꿈을 잃은 게 아니라, 꿈으로 가는 문의 위치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시작된, 선택과 습관과 각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틀 깨기: 우리는 왜 갇혀 있다고 느끼는가

군 전역 후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반가움은 잠깐이었고,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뭔가 달라진 게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 친구는 누구보다 눈빛이 또렷했습니다. 국문학과에 가서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재회한 그 친구는 늘 불안해 보였고,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았습니다. 친구는 이과로 진학해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고, 자신이 품었던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매일 자책하며 살고 있었던 겁니다. 문제는 그 꿈을 다시 이루려면 반드시 국문학과에 재입학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철학에서 말하는 '실존적 틀(existential frame)'의 함정입니다. 여기서 실존적 틀이란,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부모, 지역, 학력, 주변의 시선—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뜻합니다. 이 틀은 불편하면서도 익숙해서, 대부분 그 안에 머물며 선택지가 없다고 착각합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탄생과 죽음 사이에 던져진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그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 바로 수많은 선택이고, 선택을 뜻하는 영어 단어 'choose'는 고대 인도유럽 조어 'ge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에는 '선택하다'와 동시에 '맛보다'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인간을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어원 'sapere' 역시 '분별하다'와 '맛보다'를 동시에 의미합니다. 결국 인간이란 삶을 직접 맛보고 분별해 선택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틀 안에만 있으면 맛볼 수 있는 것의 종류 자체가 줄어듭니다. 제가 친구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 실존적 틀은 학력, 출신, 직업, 주변의 시선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다
  • 틀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익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어렵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맛보고 선택하는 존재'이므로, 틀 안에 머무는 것은 본질을 거스르는 일이다
요약: 우리가 갇혀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환경이 만들어낸 실존적 틀 때문이며, 이 틀을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첫 출발점이다.

 

각성: 틀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를 찾는 순간

제가 친구에게 처음 꺼낸 말은 이랬습니다. "굳이 국문학과에 다시 가지 않아도 돼. 네가 가진 컴퓨터 실력을 활용해서 블로그로 글 쓰는 연습을 해봐." 친구는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자신은 문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는 열등감, 전공자들 사이에서 인정받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바로 틀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친구를 억지로 끌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변화는 강요로 오지 않습니다. 각성(awakening)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각성이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라, 이전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야 한다는 강력한 내적 동기가 생기는 순간을 말합니다. 이 동기는 보통 깊은 독서나 강연, 평소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경험, 혹은 커다란 위기를 통과하면서 찾아옵니다. 친구의 경우엔 제가 건넨 말 한마디보다, 스스로 자책하며 소모한 시간이 너무 길다는 사실을 직시했을 때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각성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먼저 무언가가 무너지고 난 자리에서 솟아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framing)이라고 부릅니다. 인지적 재구성이란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른 틀로 해석하는 사고 전환 과정을 말합니다. 친구가 "나는 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다"라는 틀을 "나는 기술과 글쓰기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사람이다"로 바꾸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행동이 따라왔습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에 따르면, 부정적 자기인식을 긍정적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불안 감소와 행동 변화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요약: 각성은 외부 자극이 아닌 내면의 무너짐 이후 찾아오며, 인지적 재구성이 그 변화를 행동으로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습관: 문지방을 실제로 넘는 방법

친구가 블로그를 시작한 첫 달, 글 하나를 쓰는 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부 지우고 다시 썼고, 조회수가 한 자리에 머물면 의욕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때 제가 해준 말이 있었습니다. "팔 굽혀 펴기 1,000개를 한 번에 하려는 사람은 없잖아. 하루 종일 몇십 개씩 나눠서 하면 몇 달 뒤엔 진짜로 되거든." 거창한 조언이 아니었지만, 친구는 그날부터 하루에 짧은 글이라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고 합니다. 행동 활성화란 동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을 먼저 반복함으로써 동기 자체를 만들어내는 전략입니다. 출처: 미국 국립의학도서관(NIH/PubMed)에 게재된 연구들에 따르면, 습관 형성에는 평균 66일의 반복이 필요하며, 행동의 크기보다 일관성이 습관 정착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친구가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저는 그에게서 고등학교 때의 눈빛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걸 느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 글의 첫 번째 독자를 자처했습니다. 허술한 문장을 집어내기도 했지만, 잘 쓴 단락은 구체적으로 짚어서 칭찬했습니다. 이 역할이 단순한 응원을 넘어, 친구가 자신을 지켜보는 관객이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게 해 줬습니다. 사람은 혼자 반복하는 것보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속력이 훨씬 달라집니다. 저는 이걸 직접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확신합니다.

결국 친구는 5년이 지난 후 온라인 작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라틴어 격언은 단순히 "오늘을 즐겨라"가 아니라,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조정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선택'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문지방을 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 반복하는 가장 작은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요약: 습관은 동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작은 행동을 먼저 반복해 동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관객의 존재가 그 지속력을 결정적으로 높인다.

 

자주 묻는 질문

Q. 꿈이 전공과 전혀 다른 방향일 때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A. 전공을 바꾸거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큰 장벽이 됩니다. 제 친구도 그랬습니다. 지금 가진 기술과 꿈을 연결하는 교차점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면 블로그로, 말을 잘한다면 팟캐스트로, 그 방향에서 조금씩 시작하면 됩니다.

 

Q. 습관을 만들려고 했는데 며칠 만에 포기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의지력보다 환경이 먼저입니다. 실패의 원인은 대부분 목표가 너무 크거나, 혼자 하려다 지치는 경우입니다. 행동 활성화 원칙대로 하루 목표를 터무니없을 만큼 작게 줄이고, 진행 상황을 봐줄 사람을 한 명 만드는 것만으로도 지속률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Q. 카르페 디엠이 단순한 명언 그 이상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흔히 쾌락주의적 격언으로 오해받는데, 실제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지금'뿐이라는 실존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과거는 이미 고정돼 있고 미래는 아직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Q. 각성은 어떻게 하면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나요?

A. 각성은 강제로 만들기 어렵지만, 조건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깊이 있는 독서, 평소와 다른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하거나,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인지적 재구성이 일어날 수 있는 자극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론

친구가 소설가가 된 건 갑자기 용기가 생겨서가 아니었습니다. 틀을 인식하고, 각성의 순간을 지나, 매일 조금씩 글을 쓰는 습관을 5년 동안 쌓은 결과였습니다. 제가 그 과정에서 한 역할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냥 첫 번째 독자가 되어줬고, 가끔 솔직한 말을 건넸을 뿐입니다.

지금 어떤 꿈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시작점이 틀렸다는 두려움보다 지금 가진 것에서 가장 작은 한 걸음을 찾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문지방은 완벽하게 준비된 날이 아니라, 오늘 딱 한 번의 작은 반복 위에 놓여 있습니다.

 

참고 : 매일 되새겨요” 차인표가 60살 되고 느낀 인생의 비밀
         https://www.youtube.com/watch?v=4q62qJNP6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