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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정강이가 부러져 넉 달 깁스를 했던 그 시간이 그렇게 오래 남을 줄 몰랐습니다. 목뼈가 부러져 평생 전신마비 판정을 받고도 치과의사가 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제가 경험했던 그 넉 달이 갑자기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짧은 불편함이었지만, 그게 제 삶의 방향을 꽤 많이 바꿔놓았거든요.
척수손상, 그리고 죽음보다 어려웠던 선택
2002년 여름,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한 청년이 수영장 다이빙 사고로 경추(목뼈)가 골절되는 척수손상을 입었습니다. 척수손상이란 척추 안쪽을 지나는 신경 다발이 손상되는 것으로, 손상 위치에 따라 팔다리 감각과 운동 기능 전체가 영구적으로 마비될 수 있습니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목 아래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키 188cm에 85kg, 공부도 운동도 잘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스스로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겁니다. 수면제를 먹고 자고 또 깨어나도 중환자실인 현실 앞에서 그는 혀를 깨물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제가 깁스 한 달 차에 계단 앞에서 좌절하던 기억이 겹쳐서 민망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남은 건 거창한 의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간호사에게 책을 보여달라고 부탁했고, 읽다가 '죽으려고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죽자'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 작은 전환이 이후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그가 다시 품은 꿈은 치과의사였습니다. 전신마비 상태로 복학한 뒤 무리한 학업은 결국 욕창으로 이어졌습니다. 욕창(pressure ulcer)이란 피부의 같은 부위에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져 혈액 순환이 차단되고 조직이 괴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척수 마비 환자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살이 썩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더 위험합니다. 그의 엉덩이에는 주먹만 한 욕창이 생겼고 패혈증 직전까지 갔습니다. 패혈증(sepsis)은 감염이 혈류 전체로 퍼져 전신 장기가 손상되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입니다.
의사는 다리 절단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이 상태로 휴학하면 다시는 복학 기회가 없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교수님께 '방학까지 한 달만 죽지 않게 해달라'고 눈물로 간청했다는 대목에서 저는 제가 깁스 기간 동안 어머니 걸음에 맞춰 함께 걷던 그분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저는 불편한 쪽이 저라고만 생각했는데, 정작 더 힘드셨던 건 옆에 계시던 어머니였겠구나 싶었습니다.
- 척수손상: 목뼈 골절로 인해 목 아래 전신마비 판정
- 욕창: 감각 없는 상태에서 장시간 압박으로 조직 괴사 발생
- 패혈증 위기: 즉각 수술 권고를 거부하고 방학까지 버팀
- 복학 유지: 휴학 시 재복학 불가라는 판단 하에 학업 강행
손가락 없는 치과의사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되기까지
그는 비장애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면허증을 손에 쥔 순간부터 또 다른 벽이 시작됐습니다. 손을 전혀 쓸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을 진료 현장에 쓰겠다는 병원이 없었습니다. 전국의 치과에 지원서를 넣으며 수없이 거절당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원장, 부원장, 실장에게 계속 전화하고 메모를 남기며 '딱 한 번만 보여줄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연락이 왔고, 그는 이미 수만 번의 연습을 마쳐둔 상태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준비라는 건 기회가 생긴 다음에 하는 게 아니라, 오기도 전에 이미 끝내두는 거라는 걸 그의 이야기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가 발명한 것이 있습니다. 손가락을 쓸 수 없어도 치과 기구를 손에 고정할 수 있는 보조 도구로, 세계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이는 보조공학(assistive technology) 분야의 실제 적용 사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보조공학이란 장애인이 일상생활이나 직업 활동에서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기술·시스템 전반을 말합니다. 그는 환자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수십만 번의 연습을 반복했고, 제 경험상 이건 단순 반복이 아니라 자기 손을 흉터로 덮는 수준의 훈련이었습니다.
진료실 초기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며 진료를 거부하거나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느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게 진료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6개월이 지나자 환자들이 그를 일부러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꼼꼼하고 정확하고 친절하다는 이유로.
저는 깁스를 하던 넉 달 동안 내 보폭에 맞춰 걷던 어머니를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습니다. 그 경험이 제 삶에서 꽤 오랫동안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4개월 불편했던 것과, 평생을 그 속도로 살아야 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다시 실감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약 13억 명이 어떤 형태로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출처: WHO, Disability and Health).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사회적 편견과 물리적 장벽이라는 이중의 벽 앞에 서 있습니다. 그가 버텨온 것은 단지 몸의 한계가 아니라 그 이중 벽이기도 했습니다. 국내 장애인 고용 현황을 보면, 중증 장애인의 고용률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그러니 그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된 것은 개인의 성공이기 이전에, 그 벽에 금을 낸 일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신마비 상태로 치과의사 시험을 통과하는 게 실제로 가능한가요?
A. 가능했습니다. 그는 비장애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습니다. 필기 시험뿐 아니라 실기 역량도 요구되는 과정이었는데, 이를 위해 특수 제작된 보조 고정 도구를 직접 발명해 훈련에 사용했습니다. 제도가 허용한 게 아니라 그가 방법을 만들어낸 경우입니다.
Q. 척수손상 환자는 왜 욕창이 특히 위험한가요?
A. 척수손상으로 감각이 없는 부위는 피부가 눌려 괴사가 시작되어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발견 자체가 늦어지고, 치료 시기를 놓치면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가 욕창을 방치한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Q. 장애가 있으면 병원 취업이 법적으로 제한되나요?
A. 법적으로 제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실질적인 배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전국 치과에 지원하고 수없이 거절당한 것도 그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자료에서도 중증 장애인의 취업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Q. 깁스를 해본 경험이 장애 인식에 실제로 영향을 주나요?
A. 제가 직접 겪어보니, 짧은 기간이어도 꽤 달라집니다. 제 경우엔 넉 달의 깁스 생활 동안 처음으로 '내 보폭이 아닌 타인의 속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상황을 경험했고, 그게 장애인 이동권이나 배려에 대한 감각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물론 그것이 평생의 장애와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출발점이 됐습니다.
결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장애 극복'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틴 무식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표현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습니다. 극복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완성된 서사의 냄새가 나는데, 버팀에는 지금도 현재형인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가 넉 달 깁스를 끝내고 자연스럽게 두 발로 걷게 됐을 때 느꼈던 감사함, 그리고 그때부터 30여 년간 제 삶에서 작은 나침반이 됐던 그 경험이,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다시 한번 정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 혼자만의 보폭으로 달리지 않고, 옆 사람의 걸음에 맞춰보는 것. 그게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 넉 달에서 배웠고, 그분의 이야기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참고 : 혀를 깨물고 죽으려던 전신마비 환자가 대한민국 최고 명의가 되기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h-Fltc9qVE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