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이가 들면 저절로 너그러워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살아보니, 그 믿음은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저를 꾸짖지 않는 환경이 되자, 서서히 제 안의 못된 버릇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꼰대 소리 안 듣고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정확히 같은 말입니다.
나이 들수록 성격이 좋아진다는 건 환상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원숙해지고 포용력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서른다섯을 넘기면서 오히려 사소한 일에 짜증이 늘었고, 제가 하는 것은 다 맞고 상대방이 문제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동화된 행동 패턴(automated behavioral patter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자동화된 행동 패턴이란, 의식적인 판단 없이 과거의 습관대로 반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오랫동안 반복한 행동이 뇌에 각인되어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의 불씨가 대부분 이런 무의식적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걸, 저는 꽤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주변 어른들을 보며 '꼰대'라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들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단순히 어린아이의 습관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누가 저를 직접 꾸짖어 주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 순간부터 성격은 방치될 위험에 놓입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에 따르면, 성인기의 성격 변화는 환경적 자극과 자기 인식 노력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솔직히 인정하자면, 저는 아직도 질투심이 많고 사소한 불편함에 짜증을 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격 변화를 막는 건 재능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멋있는 어른처럼 보이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진짜 멋있는 어른과 멋있는 척하는 어른 사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명확합니다. 전자는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후자는 교묘하게 상황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 해석합니다.
심리학 용어로 이를 자기 봉사적 편향(self-serving bias)이라고 합니다. 자기 봉사적 편향이란, 성공은 자신의 능력 덕분이고 실패는 외부 탓으로 돌리려는 인지적 경향을 뜻합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자주 걸립니다. 무언가 잘 풀리면 '내가 잘했다'라고 생각하고, 틀어지면 '상황이 나빴다'라고 합리화하는 패턴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저는 이렇게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컴포트 존(comfort zone), 즉 심리적 안전 지대에서 벗어나 낯선 실패와 성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자기 봉사적 편향을 스스로 깨뜨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경험의 총량이 쌓일수록, 내가 얼마나 틀릴 수 있는 존재인지를 몸으로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어른이 되는 조건을 정리하자면, 제가 경험을 통해 납득한 것들은 이렇습니다.
- 나쁜 습관을 발견했을 때 즉시 인정하고 교정하려는 의지
- 컴포트 존 밖에서 시행착오를 기꺼이 겪는 태도
-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음을 무기력 없이 받아들이는 성숙
- 완벽하지 않아도 주변 누군가에게 꾸준히 마음을 쓰는 실천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재능과는 관계없습니다. 전부 태도의 문제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좋은 어른'이 어떤 특별한 자질을 타고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전망대가 아닌 방파제로 서는 것이 어른입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부장이 이지안을 대하는 방식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흔들리는 사람 곁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줍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어른을 너무 '다 아는 사람'으로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른다움을 전망대와 방파제로 비교해보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전망대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관조적 태도, 즉 '내가 다 알고 있었다'는 식의 팔짱 낀 시선입니다. 반면 방파제는 파도를 피하지 않고 맞서면서 뒤에 있는 것들을 지켜내는 역할입니다.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 진짜 어른의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출처: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NIH)의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 즉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적응하는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자기 조절 훈련을 통해 강화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버티는 것도 훈련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요즘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 간다는 표현을 다시 생각합니다. 미생이란 바둑에서 아직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돌을 뜻하고, 완생이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제가 아직 미생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자리를 지키며 옆 사람을 응원하는 것. 그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어른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이 들면 성격이 자연스럽게 좋아지지 않나요?
A.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원숙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APA의 연구에서도 성인기의 성격 변화는 환경 자극과 자기 인식 노력에 달려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꾸짖어 줄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굳어지기 쉽습니다.
Q.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좋은 습관을 유지하고 나쁜 습관을 빠르게 고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컴포트 존 밖으로 나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감각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두 가지를 병행하면 자기 봉사적 편향에 빠지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Q. 무의식적 행동을 고치는 게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의 자동화된 행동 패턴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매일 짧게라도 '오늘 내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순간이 있었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꽤 달라집니다.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빈도를 줄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Q. 좋은 어른이 되려면 특별한 사람이어야 하나요?
A.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드라마 속 박동훈 부장도, 제가 살면서 존경하게 된 어른들도 모두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함보다 중요한 건 주변 누군가에게 꾸준히 마음을 쓰는 작은 실천입니다. 멋있는 어른은 처음부터 멋있던 게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렇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좋은 어른이 되는 일은 거창한 자기 계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제 경우에는 '내가 지금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진 않은가'를 하루에 한 번이라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심리적 회복탄력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자기 봉사적 편향은 방치하면 점점 짙어집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 이 두 속담을 함께 붙들고 살면 꼰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은 확실히 낮아집니다. 나쁜 습관을 빠르게 인식하고 고치면서, 동시에 컴포트 존 밖의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답입니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길은 멀지만, 방파제처럼 오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 어른이 된다는 건 묵묵히 버텨내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7mz_YpTuxI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