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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 과학고 진학 목전, 누가 봐도 '잘 살 것 같은' 사람이 스스로 삶을 끊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좋은 성적과 좋은 환경만 갖추면 행복하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처음으로 흔들린 순간이었습니다.
이키가이 — 성적표에는 없는 삶의 목적
일반적으로 성공한 삶의 조건으로 좋은 성적, 좋은 직장, 안정적인 수입을 꼽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꽤 위험한 착각입니다.
그 선배는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의대 진학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습니다. 객관적 조건만 보면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심리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이키가이(生き甲斐)였습니다. 이키가이란 일본어로 '살아있는 이유', 즉 자신이 왜 오늘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면의 답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목표나 직업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잘하는 것·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견되는 삶의 동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일본 오키나와 장수촌 연구에서 이키가이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낮다는 결과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NIH 공개 논문). 삶의 목적이 단순히 마음의 위안을 넘어 생존율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선배가 부족했던 것은 성적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는 아마도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질문에 한 번도 스스로 답한 적 없이, 외부가 설계해 준 트랙 위를 달리다 어느 순간 완전히 소진됐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 이키가이가 높은 집단은 목적 없는 집단 대비 장기 사망률이 낮게 나타남 (NIH 연구)
- 삶의 목적은 역경과 불확실성 속에서 통제감(sense of control)을 유지하는 심리적 기반이 됨
- 외부 기준(성적, 직업)만으로 구성된 삶은 이키가이를 대체하지 못함
자기결정 — 환경의 덫을 넘어서는 유일한 방법
일반적으로 환경이 좋으면 행복도 따라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환경은 오히려 덫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 선배를 둘러싼 환경은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좋은 성적, 기대하는 부모님, 응원하는 선생님들. 그런데 그 완벽한 환경이 오히려 '이 길에서 벗어날 선택지는 없다'는 압박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자기 결정감(Self-Determination)이 완전히 박탈된 상태, 저는 그게 가장 무서운 형태의 결핍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결정감이란 자신의 행동과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내적 감각을 말합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제안한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적 건강은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유지됩니다(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공식 사이트). 세 가지 중 자율성, 즉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 무너질 때 사람은 가장 먼저 삶의 의미를 잃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던 시기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조건은 나쁘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이 무거웠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이걸 원해서 하는 건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꺼내 들었습니다.
행복은 환경이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환경이 제공하는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피 동기(Avoidance Motivation)라고 부릅니다. 회피 동기란 두려움이나 불쾌함을 피하려는 동기로, 이 상태가 지속되면 삶의 주도권을 서서히 외부에 넘겨주게 됩니다. 진짜 자유는 조건이 좋을 때 생기는 게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하겠다는 결단에서 생깁니다.
제가 심리학 관련 책을 반복해서 읽고 필사를 병행하게 된 것도 이 지점 때문이었습니다. 생각의 틀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환경이 달라져도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됩니다. 글을 손으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제 삶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이론보다 훨씬 직접적인 효과가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키가이를 찾으려면 어떻게 시작하나요?
A. 일반적으로 거창한 '사명'을 찾아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가'라는 작은 질문이 더 실용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보상받을 수 있는 것, 이 네 가지가 겹치는 지점을 일상 속에서 조금씩 찾아가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Q. 성공한 사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A.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결정감(SDT 이론의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가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외부 기준으로만 설계된 삶을 달리다 보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내면의 공허감이 쌓입니다. 제가 그 선배를 지금 이해하게 된 것도 이 구조를 알고 나서였습니다. 성적과 행복은 별개의 변수입니다.
Q.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환경이 안 받쳐주면 어떻게 하나요?
A. 환경을 탓하며 행동하지 않을 핑계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말이 저는 꽤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환경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환경을 바꾸기 전에 먼저 바꿀 수 있는 건 생각의 틀이었습니다. 독서와 필사처럼 비용이 거의 없는 방법으로 내면의 기준을 먼저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첫 번째 단계였습니다.
Q. 회피 동기와 접근 동기의 차이가 뭔가요?
A. 회피 동기는 두려움이나 불쾌함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방식이고, 접근 동기는 원하는 것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섞여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회피 동기가 주된 사람은 '하기 싫은데 안 하면 안 되니까'라는 패턴 속에 갇혀 삶의 에너지가 빠르게 소진됩니다. 이키가이가 있는 삶은 접근 동기 비율이 높습니다.
결론
그 선배의 이름을 들었을 때 모두가 입을 다물었던 이유는, 아무도 그 일이 '그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질문을 방치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삶의 밀도는 조건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키가이처럼 '왜 오늘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 결정감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선택하고 있는지 — 이 두 가지가 실질적인 차이를 만든다고 봅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됩니다. 제가 시작한 건 그냥 책 한 권을 손으로 옮겨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행위가 생각의 틀을 바꿨고, 삶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늘 단 하나의 선택이라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저는 그게 주체적 삶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 99%가 평생 한 번도 안 해본 삶을 통째로 뒤집는 질문 (동기부여)
https://www.youtube.com/watch?v=N6ior3qwx-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