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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멈칫합니다. 제가 회사 다니던 시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그 질문을 던졌을 때도 그랬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아직은 아니야"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직'이 평생 끝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행복의 조건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제가 겪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행복의 조건 — "10억 생기면 행복할 것 같아?"
몇 년 전, 제가 직접 경험한 장면이 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던 중 대학 친구 넷을 오랜만에 만났고, 밥을 먹다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 행복하니?" 다들 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참 멍하니 있더니, 한 녀석이 입을 열었습니다. "집이 없으니까 불행하지." 또 다른 친구는 아내와 사이가 안 좋다고 했고, 한 명은 회사에서 매일 면박이나 당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친구는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벗어나야 행복할 것 같아"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깨달은 건, 우리 모두 행복의 기준을 '아직 채우지 못한 무언가'에 두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경제적 척도, 가족 관계, 사회적 지위 같은 조건들을 충족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억이 생기면 그 순간부터 행복해질까요? 제 생각엔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적응 수준 이론(Adaptation Level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적응 수준 이론이란, 인간은 어떤 긍정적 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하여 결국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개념입니다. 복권 당첨자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의 장기적 행복감이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출처: APA PsycNet, Brickman et al., 1978)는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대표 사례입니다. 10억을 얻기까지의 과정에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다가 조건이 갑자기 충족된다고 해서 행복이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제가 친구들과 나눈 그 대화에서도 그대로 확인됩니다.
- 집, 돈, 직장 — 조건을 채워도 행복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 적응 수준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좋은 변화에도 금방 익숙해진다
-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에 가깝다
사회적 관계 — 내 옆에 누가 있느냐가 행복을 바꾼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심리학에서 빠지지 않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입니다. 자기결정이론이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제안했습니다(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공식 사이트). 세 가지는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성입니다.
자율성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돈이나 시간의 제약으로 선택지가 막혀 있으면 행복감이 낮아지는 건 당연합니다. 유능감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나아졌다는 감각입니다. '나는 이걸 잘한다'는 느낌이 쌓일 때 만족감이 따라옵니다. 제가 블로그 글을 꾸준히 쓰는 이유 중 하나도 그 유능감의 작은 자극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관계성은 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입니다. 저서 '커넥티드(Connected)'에서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영향력을 수치로 보여줍니다.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15% 높아지고, 친구의 친구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고 합니다. 이걸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이라 부르는데, 사회적 전염이란 감정이나 행동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반대로 우울한 사람과 장시간 함께하면 그 감정도 전염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 접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내 기분이 내 선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지금 이 순간 — 행복은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길에 저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의 기준을 바깥에 두고, 스스로는 아직 그 기준에 못 미친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척도, 가족 관계, 사회적 명성 같은 외부 지표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 '나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채워진다고 해서 정말 행복해지는 걸까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행복은 미래에 얻는 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마음의 평안함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함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서는 이를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 SWB)'이라 부릅니다. 주관적 안녕감이란 삶에 대한 인지적 평가와 긍정 감정의 균형을 말하는 개념으로, 외부 조건보다 개인의 해석과 습관에 더 크게 좌우됩니다. 지금 행복하는 방법을 모르면 미래에도 행복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제가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억지로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는 피곤함에서 벗어나, 저와 성향이 맞는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소하게 낭비하는 듯한 시간들 — 별 의미 없이 웃고 떠드는 그 순간들 — 이 실제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행복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좋은 관계는 결국 나 자신을 잘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할 때, 나에게 맞는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행복해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A.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는 돈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적응 수준 이론에 따르면, 일정 수준을 넘어선 이후에는 소득이 늘어도 행복감은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제 친구들도 각자의 경제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했지만, 그 기준이 채워진 이후의 삶을 상상해본 적은 없어 보였습니다.
Q. 자기결정이론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기가 너무 어려운데요?
A. 세 가지를 동시에 완벽히 갖추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결정이론(SDT)은 이 세 욕구가 완전히 채워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 충족될 때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라도 조금씩 채워가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Q. 주변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으면 관계를 끊어야 하나요?
A. 무조건 끊는 게 답은 아닙니다.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 개념은 주변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 즉각 단절하라는 처방이 아닙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엔 에너지를 쏟는 관계의 우선순위를 조정했고, 그것만으로도 일상의 온도가 달라졌습니다.
Q.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행복하기 어렵다는 게 사실인가요?
A.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주관적 안녕감(SWB)은 습관적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행복을 느끼는 방식을 연습하지 않으면, 조건이 바뀌어도 그 감각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각 시기마다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는 게 맞습니다.
결론
그날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 모두 행복을 '나중에 얻을 무언가'로 유예해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 돈, 좋은 관계, 자유로운 시간 — 그 조건들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며 현재를 불행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행복이란, 내 삶을 내 스스로 규명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그럭저럭 부대끼며 살아가는 데에서 오는 소소한 만족감입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거창하지 않습니다. 나를 조금 더 알아보고,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과 아무 목적 없이 시간을 낭비해보는 것. 그 시간이 결국 가장 오래 남는 행복이었다는 걸, 제가 먼저 경험했습니다.
참고 : 내 주변 사람들이 중요한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xS2h8ClyCT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