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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한동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잘 된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 수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믿음이 얼마나 사람을 조용히 옥죄는지 실감했습니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사람을 더 깊은 구렁으로 밀어 넣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행복이 의무가 된 사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제가 대학 다닐 때 유행처럼 번진 책이 있었습니다. '긍정의 힘'류의 자기 계발서들이었는데, 그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이 단순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이었죠. 저도 컴공 전공이었지만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상담가 역할을 맡게 됐는데, 찾아오는 친구들의 말은 거의 판에 박힌 듯 비슷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지?", "왜 나는 매사에 긍정적이지 못할까?" 그게 너무 인상 깊어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런 흐름은 사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심리학의 초점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긍정 심리학이란, 기존 심리학이 우울이나 불안 같은 병리적 상태를 치료하는 데 집중했던 것과 달리, 행복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분야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 흐름이 학문을 넘어 사회 전체에 '행복해야 한다'는 암묵적 의무를 심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긍정성 과잉(Toxic Positivity)이라는 부작용이 생겨났습니다. 긍정성 과잉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받아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때로는 그게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신호가 됩니다. 그런데 사회가 그 신호를 '실패'로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부여했을까, 저는 그 질문을 지금도 종종 꺼내봅니다.

  • 긍정 심리학의 확산이 '행복'을 개인의 목표가 아닌 사회적 의무로 만들었습니다
  • 긍정성 과잉은 역설적으로 부정적 체념과 무기력을 키웁니다
  • 부정적 감정은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요약: 긍정 심리학의 사회적 확산이 행복을 의무로 만들었고, 이 긍정성 과잉이 오히려 더 깊은 좌절을 낳고 있습니다.

 

희망을 버려야 할까 — 철학자들의 엇갈린 시선

희망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논리를 처음 접했을 때 꽤 불편했습니다. 노르웨이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의 저서 『삶은 무엇으로 회복하는가』를 통해 이 주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됐는데, 희망을 둘러싼 철학적 논쟁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온갖 재앙과 함께 희망이 들어 있었습니다. 니체는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인들이 희망을 맹목적이고 해로운 것으로 봤다고 해석했습니다. 달콤한 기대로 사람을 유혹해 결국 좌절을 안긴다는 논리입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희망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대'로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이란, 자신이 통제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외부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내적 평정을 추구하는 고대 로마의 철학 사조를 말합니다. 에픽테토스 입장에서 희망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집착하게 만드는 함정이었던 셈입니다.

독일의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역시 희망을 버릴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불필요한 욕망을 낳고,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좌절로 이어진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염세주의(Pessimism)는, 세계와 삶을 고통의 연속으로 바라보며 기대 자체를 줄이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삶으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을 뜻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관점에 솔직히 찜찜함을 느꼈습니다. 좌절을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기대를 포기하는 건, 좌절에 굴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스벤젠은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제3의 길을 제시합니다. 희망을 꼭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건전한 희망이란,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작은 가능성을 향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살피는 태도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무작정 '잘 될 거야'를 외치는 것과, '안 될 수도 있지만 해볼 수 있는 건 해보자'는 마음은 일상에서 완전히 다른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요약: 니체, 에픽테토스, 쇼펜하우어는 희망을 집착과 좌절의 근원으로 봤지만, 스벤젠은 결과에 매이지 않는 담담한 희망이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스벤젠은 긍정성 과잉도 경계하면서, 동시에 유토피아적 맹신(Utopian Fanaticism)도 비판합니다. 유토피아적 맹신이란, 현실의 점진적 변화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뒤엎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극단적 확신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이상이 현실에서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떠올리면, 이 비판은 꽤 무겁게 다가옵니다. 스벤젠은 이를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의 상실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도 그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출처: WHO 정신건강 개요).

제가 직접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느낀 건, 사람들이 희망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이 정도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근거 없는 확신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행복이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죠. 우리의 목표는 각자가 설정한 것에 최선을 다해 다가가는 것이고, 실패하면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 있다면 그게 행복일 수 있겠지만, 행복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벤젠이 종교적 희망에 부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다소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 희망이야말로 유한한 존재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내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겸손과 그 안에서의 용기입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삶의 의미감(Sense of Meaning)이 회복탄력성(Resilience), 즉 고난 이후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능력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출처: APA 회복탄력성 개요).

결국 완전한 긍정도, 완전한 부정도 사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저는 좌절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좌절 속에서도 다음 발걸음을 찾아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염세주의가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것이기도 합니다.

요약: 삶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각자의 방향을 향한 지속적인 시도이며, 좌절에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힘이 진짜 희망의 실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나쁜 건가요?

A. 긍정적인 사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강요, 즉 긍정성 과잉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때로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에, 억지로 무시하거나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도 예전엔 그 구분을 몰랐습니다.

 

Q. 쇼펜하우어처럼 희망을 버리는 게 현실적인 태도 아닌가요?

A. 희망을 버리면 좌절도 없다는 논리는 얼핏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좌절을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기대를 포기하는 것은, 오히려 삶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가능성 자체를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벤젠도 이 부분에서 염세주의와 선을 긋습니다.

 

Q. 희망을 갖되 집착하지 않는 게 말처럼 쉬운가요?

A.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훈련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결과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습관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봅니다. 한 번에 완성되는 태도가 아니라, 매번 선택하는 자세입니다.

 

Q. 삶의 목표가 행복이 아니라면 뭐가 되어야 하나요?

A. 저는 삶의 목표는 각자가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실패를 딛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힘입니다. 행복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지만, 목표 자체가 되면 오히려 스스로를 옭아매게 됩니다.

 

결론

정리하면, 행복을 의무처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와 희망을 아예 포기하라는 염세주의 사이에서, 저는 둘 다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좌절이 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는 담담한 태도, 그게 제가 경험을 통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방향입니다.

이 주제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라르스 스벤젠의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함께 나올수록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꽤 괜찮은 대화 상대였습니다.

 

참고 : 긍정적 사고가 인생을 망치는 과정
         https://www.youtube.com/watch?v=W78-yl-h2z4